[BASKETBALL]NBA카드와 함께 보는 마이클 조던 '유니폼 에피소드'

손대범 농구해설위원
2024-06-14


글_손대범(KBS 농구해설위원, 점프볼 편집인)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우승, 득점 기록, 농구화 등으로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는 선수이지만, ‘유니폼’으로도 상당한 이슈를 만들어냈던 스타이기도 하다. 유니폼 때문에 스태프들을 당황하게 만든 사례만 놓고 봐도 이 부문 1위가 아닐까 싶다.


#1 결승전인데… 유니폼을 두고 온다고?


NBA는 전 세계 프로농구 리그 중 가장 선진화된 리그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부분이 분업화되어 있다. 구단마다 '장비 담당'이 있어 선수들이 신을 유니폼뿐 아니라 헤드밴드, 리스트밴드, 양말, 농구화도 챙겨준다.


그런데 종종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날 때도 있다. 2022년 3월에는 멤피스 그리즐리스 선수들이 오클라호마 시티 썬더와의 경기를 앞두고 단체로 홈경기용 흰색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것이다. 문제는 오클라호마 시티도 흰색 유니폼이었다는 것이다. 이날은 원정팀 멤피스가 진한색 유니폼을 입기로 협의된 날이었기에 제임스 윌리엄스 심판은 선수들이 제대로 된 저지를 입고 올 때까지 경기를 연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결국 선수들은 전부 라커룸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와야 했다.


생각보다 이런 일은 흔하다. 2023년 1월 5일 텍사스 A&M 대학은 플로리다 대학과의 경기를 앞두고 사색이 됐다. 장비 담당 매니저가 팀 유니폼을 호텔에 두고 온 것이다. 주최측은 경기 지연에 대한 경고로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했고, 플로리다 대학은 경기 시작 전에 테크니컬 파울 자유투 1구를 넣어 1-0으로 앞선 채 팁오프를 했다.


선수 개인의 실수도 있다. 올랜도 매직의 조나단 아이작은 루키 시절, 교체투입 직전에 유니폼을 라커룸에 두고 온 것을 깨닫고 급히 라커룸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 에피소드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이 있었다. 바로 1984년 LA올림픽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미국대표팀의 에이스는 마이클 조던이었다. 이미 NBA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불스에 지명 되어 데뷔를 앞두고 있던 조던은 LA올림픽을 치르면서 자신의 위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결승을 앞두고 미국팀 매니저는 화들짝 놀라고 만다. 조던이 숙소에서 유니폼을 잘못 들고 온 것이다. 이날 스페인과 경기를 치러야 했던 미국대표팀은 검정 유니폼을 입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던은 검정이 아닌 흰색 유니폼을 들고 왔다.


화들짝 놀란 담당자들은 부랴부랴 올림픽 선수촌에 전화해 협조를 구했다. 숙소까지 가서 조던의 방을 뒤져 유니폼을 찾은 것이다. 때마침 LA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으로 인해 담당자들은 조던에게 유니폼을 건넬 때까지 마음을 졸였다는 후문이다.


조던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했던 바비 나이트 감독에게 “더 이상의 준비는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준비되었어요”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고. 다행히 유니폼이 잘 전달되었고 비로소 모든 준비를 마친 조던은 늘 그랬듯 펄펄 날며 미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미국은 96-65로 승리했다.


이 에피소드는 LA올림픽 우승 후 20년 더 지난 뒤 공개됐다. 인디애나 대학의 코치이자 당시 대표팀 트레이너였던 팀 갈(Tim Garl)이 밝힌 내용으로 “경기에 앞서 엄청난 딜레마에 빠졌다”라고 돌아보기도 했다.


늘 승부욕에 불탔던 완벽주의자이자 ‘농구황제’라 불렸던 마이클 조던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2 유니폼 실종 사건


이 역시 흔치 않은 일이다. 1990년 2월 14일, 시카고 불스의 올랜도 매직 원정 경기에서 일어난 일인데, 경기에 앞서 스태프는 조던의 23번 유니폼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원정이었기에 여벌의 유니폼조차 없었던 상황. 혹시나 23번이 마킹된 원정 유니폼을 입은 관중이 없나 수소문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았다.


마침 이름이 마킹되지 않은 12번 유니폼을 찾았고, 조던은 어쩔 수 없이 23번이 아닌 12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야 했다.


▲ 마이클 조던의 커리어 유일의 12번 유니폼 경기 장면이 포착되어 유명한 1990 NBA HOOPS 샘 빈센트 카드


그러나 12번이든, 23번이든 이 시기의 조던은 무적, 그 자체였다. 그는 43개의 슈팅 중 21개를 넣으며 49득점을 기록했다.


다만 불스는 이 시기에 심각한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1월 23일부터 치른 9경기에서 2승 7패에 그치고 있었다. 바로 전날 치른 마이애미 히트 전에서 107-95로 이기면서 4연패 늪에서 탈출했지만, 올랜도를 상대로는 수비와 리바운드에 열세를 보이면서 연장 끝에 129-135로 패했다.


훗날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는 ‘23번 유니폼 실종 사건의 전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는데, 올랜도 매직 구단 관계자 측 의견을 빌려 도난보다는 불스 측의 실수였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3 백보드 파괴 기념?


백보드를 부순 기념으로 농구화를 출시할 수 있는 농구선수가 마이클 조던 외에 또 있을까.


에어 조던 시리즈 중에는 ‘Shattered Backboard’ 버전이 있다. 바로 에어 조던 1 레트로 버전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알려진 블랙/레드가 아닌 오렌지/블랙 계열의 농구화다.


사연은 이렇다.


마이클 조던은 1985년 8월 26일, 나이키와 함께 유럽 투어에 참석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기념 행사를 갖고, 잉글랜드 런던에서는 유소년 트레이닝을 가졌다. (이 시기 조던은 친선경기, 자선경기에 참가를 자주 했다. 보통 NBA 선수들은 구단에 허락을 하나하나 다 받아야 했고, 구단들도 되도록 NBA 공식경기가 아닌 이상 참가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조던은 계약 조항에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프로농구 선수 중 처음있는 계약 내용이었다.)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에서는 친선 경기에 출전했다. 당시 조던은 경기 중 특유의 원 핸드 덩크를 꽂았는데 백보드가 그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경기는 당연히 지연되었는데, 이때 조던이 입은 유니폼 색깔이 오렌지/블랙이었다.


나이키는 ‘백보드 파괴’를 기념해(?) 2015년에 에어 조던 1 레트로 ‘Shattered Backboard’ 버전을 발매했다. 기존 에어 조던 1의 디자인을 충실히 따른 이 버전은 2015년에 이어 2016년, 2019년에 나왔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신었던 에어 조던 1은 2020년 8월, 조던의 사인과 함께 61만 5,000달러에 팔렸다.


#4 학부모들을 울린 45번


조던의 유니폼 일화 중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일화가 아닐까.


1995년 3월 19일, 마이클 조던은 기자회견이나 성명서 발표 없이 팩스 1장을 통해 농구계 복귀를 선언했다. 팩스에 적힌 문장은 단 한 문장. 바로 그 유명한 “I'M BACK”이다.


조던의 복귀전은 인디애나 페이서스 전이었다. 은퇴 당시와 달리 시카고 불스는 많이 망가진 상태였지만, 그랬기에 팬들은 조던이 위기의 불스를 부활시켜줄 것이라 기대했다. 고군분투 중이던 스카티 피펜의 부담도 확실히 덜어줄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코트에 선 조던의 유니폼이 낯설었다. 23번이 아니라 45번이었기 때문. 조던은 아주 오래전, 친형 래리 조던이 사용하던 45번을 달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그러나 낯선 유니폼만큼이나 조던의 퍼포먼스도 낯설었다. 18개월의 공백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 물론 위닝샷, 55득점 등 번뜩이는 퍼포먼스도 있었지만 올랜도 매직 같이 젊고 높은 팀들에게는 열세를 보였다. 급기야 1995년 동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준결승에서 하나의 사건이 일어난다.


올랜도 매직과의 1차전에서 조던은 그답지 않은 실수를 연발했고 불스 역시 무너졌다. 조던은 이 경기에서 19점에 그쳤고, 실책도 8개나 기록했다. 경기 후 조던은 “내 실수다. 오늘 패배는 내 책임이다”라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데 상대팀 닉 앤더슨이 팀 연습 후 기자들을 앞두고 큰 말실수(?)를 한다. “은퇴 전에는 빠르고 폭발적이었지만 지금은 23번일 때만큼 샤프하지 않았다. 같은 동작을 하지만 23번과는 달리 지쳐 보였다.”



이 한마디가 잠자던(?) 조던을 깨웠다. 조던은 2차전에서 갑자기 23번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팀 동료들도, 구단 관계자도 몰랐던 일. 조던은 2차전에서 38득점 7리바운드 4블록으로 펄펄 날며 팀의 승리(104-94)를 주도했다. 


리그 사무국은 갑작스럽게 등번호를 바꾼 조던에게 벌금을 물렸지만, 조던과 불스 구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등번호 교체로 울상을 지은 쪽은 따로 있었다. 바로 학부모들이다. 지금이야 ‘레어템’으로 남았지만 45번 유니폼 때문에 비용을 지출한 부모들은 꽤나 난처해 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조던의 23번 유니폼 재착용에는 당시 구단 장비를 담당하고 있던 존 리그마노우스키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조던에게 “아직 23번 유니폼이 남아있다”고 귀띔해준 것이다.


아쉽게도 불스는 샤킬 오닐과 올랜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지만, 절치부심한 조던은 1995-1996시즌에 올랜도를 4-0으로 탈락시키며 복귀 후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5 라스트 댄스 영향?


NBA 선수의 ‘실착 농구화’ 중 가장 비싼 값에 팔린 농구화는? 바로 조던의 농구화다.


에어조던 1 시리즈는 기본 30~40만 달러에 팔렸다. 또 우승 당시 신었던 농구화들도 천문학적인 액수에 넘어갔다. 1991~1993, 1996~1998 NBA 파이널 당시 신었던 에어조던 농구화 6개(6켤레의 한 짝), 일명 ‘다이너스티 세트’가 803만 2,800달러(약 107억원)에 팔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저지는 어떨까? NBA 역사상, 아니 스포츠 역사상 선수가 실제 입었던 유니폼 중 최고가는 축구 레전드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 당시 입었던 유니폼으로 928만 달러였다.



그런데 조던은 이를 뛰어넘은 1,010만 달러를 기록했다. 그 유니폼은 바로 1998년 NBA 파이널 1차전에 입었던 유니폼으로, 2022년에 경매에서 팔렸다. 1998년 파이널은 조던이 시카고 불스 일원으로 치른 마지막 파이널이었다. 「넷플릭스」의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에서 보였듯, 시카고는 이미 끝을 정해둔 여정을 시작했고, 마치 드라마처럼 조던의 위닝샷과 함께 통산 6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시작점이 바로 1차전이었기에 의미를 더했다고 볼 수 있다. 조던의 유니폼 중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4강전(리투아니아 전)에서 입은 ‘9번 유니폼’은 303만 달러를 기록했다.


글_손대범(KBS 농구해설위원, 점프볼 편집인)